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꺼운 책이지만 읽기 시작하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1813년에 발표된 작품인데도 공감 가는 문장들이 많아서 밑줄을 열심히 치면서 읽었다.
다만 다아시가 갑자기 엘리자베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작가의 설명으로 간단하게 처리되는 점과 청혼을 거절당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음에도 끝까지 사랑의 감정을 잃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그래, 그 애를 차지하기로 작정했다 이 말이지?”
“전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전 단지, 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영부인이건 혹은 저하고는 관계없는 누구의 의견이건 상관하지 않고, 제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행동할 작정입니다.” (p490)
다아시와의 결혼을 막기 위해 찾아 온 캐서린 영부인을 대하는 엘리자베스의 태도가 너무 멋있다.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왜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같은 여자가 봐도 진짜 매력이 넘친다.
그 자리에서는 당황해서 제대로 말을 못 하고 돌아선 후에야 할 말이 생각나서 이불 킥 하는 나와 완전 비교된다. 엘리자베스 같은 언니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도회에 다녀온 베넷 부인이 다이시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자 루커스는 ‘가문, 재산, 그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훌륭한 청년이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p30)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메리는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 (p31)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만’은 ‘자존감’, ‘허영’은 ‘인정 욕구’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자존감과 인정 욕구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가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내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아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지 않는다면 자존감은 자만심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오만하다고 평가 받는 다아시는 사실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넘치는 인물이며, 성격 좋다는 얘기를 듣는 빙리는 알고 보니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은 역시 오래 겪어봐야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나 보다.(라는 생각도 착각일 수 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라는 노래 가사처럼 내 자신도 잘 모르면서 타인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