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영감(장 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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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영감(장 그르니에)

숨은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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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00:38

코로나가 확산되기 직전에 다녀온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 여행을 끝으로 오랜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갈구하며 책 속에서 카잔차키스와 장 그르니에, 앙드레 지드를 만났다.

여행이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황야를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 속의 황야를 탐색하는 것이로구나라고 말한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토로스이 말처럼 여행은 주변의 풍경이 아닌 내 안을 탐사하려는 욕망의 시도라고 생각한다. 카잔차키스의 지중해 기행이나 모레아 기행,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 영감등은 이러한 우리의 내면에 고갈된 호기심과 감탄과 감동을 불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다.

프랑스의 뛰어난 에세이스트이자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이방인이라는 작품으로 최연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 산문집 지중해의 영감은 익히 잘 알려진 과 더불어 시적이고 철학적인 그르니에 특유의 글맛과 사유가 빼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책은 그르니에가 젊은 시절 살았거나 혹은 여행했던 북아프리카 알제와 오랑,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이스,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 도시들과 그 내면화된 인상을 담아내고 있다. 북아프리카 태양의 열기 가득한 밤공기, 로마 팔라티노 언덕에 서 보이는 부서진 기둥들 사이를 여행하며 느낀 고독, 프로방스의 목가적 아름다움, 수없이 서있는 그리스의 묘비명을 보고 느낀 삶과 죽음의 단상 등 그 모든 생각들을 풍부한 감정이 깃든 언어로 풀어냈다.

서문에서 알 수 있듯 그르니에는 지중해가 주는 감동을 전하고자 이 글을 썼다. 누구에게나 이미 운명처럼 행복이라고 정해진 곳, 삶이라는 단순한 즐거움의 차원을 뛰어넘어 황홀한 기쁨을 알게 하는 풍경들이 있다.

나는 때때로 내 삶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영혼의 상태를 어렴풋이 느낀 적이 있다. 그때 느끼는 영광이란 아무 것도 아닌 것일지도 모르고, 행복 역시 아무 소용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중해는 이와 비슷한 영혼의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장소와 풍경이 그르니에에게는 바로 특유의 선과 형태로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지중해였던 것이며 꽃다발처럼 묶여 있던 우리의 사고가 풀어졌다가 꽃처럼 행복하게 피어나게 한다고 생각했다.

지중해를 따라가며 여행했던 그 행복한 시간들을 떠올리기 위해서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들은 내게 늘 살아 있다. 알제의 구릉 위에서 맞이한 열기 가득한 밤 들, 욕망처럼 입술을 바짝 마르게 하는 시로코 바람, 이탈리아의 눈부신 풍경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열정, 그것은 나에게 마르지 않고 솟구치는 샘이었다.”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을 따라 연필로 줄을 긋기 시작한다. 페이지마다 넘실대는 아름다운 문장들의 파도가 넘쳐 난다. 코로나로 인해 너무나도 오랫동안 여행을 기다려왔다. 여행을 못가 안달이었던 지난 3년 간의 내 마음 속에서 찬란하게 그려지는 지중해를 얼른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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