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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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칭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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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13:13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처음 만났을 때, ‘사소한 것들이라는 말에 시선이 끌렸다. 그리고 황동규 시인의 시 즐거운 편지가 떠올랐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심정을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사소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그대를 불러보겠노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간절한 사랑은 분명 사소한 것이 아니다. 매일 의식하지는 않지만,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자연의 섭리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의 사소한 것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즐거운 편지에서처럼 사소하다고 말했지만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까? 점점 더 소설 내용이 궁금해졌다.

 

이 소설의 주인공 펄렁미시즈 윌슨댁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펄렁의 엄마가 열여섯의 나이에 낳은 아이였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자라난 펄렁에게 미시즈 윌슨의 돌봄과 가르침은 그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바탕이 된다. 처음엔 소설 속 미시즈 윌슨의 역할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유로운 노년을 지내며 집안의 일꾼에게 보이는 최소한의 자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부자라고, 어른이라고 모두 미시즈 윌슨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혼모 일꾼의 출산을 돕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연스러운 환경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크리스마스 날, 미시즈 윌슨이 펄렁이 갖고 싶어 했던 퍼즐 대신, 낡은 책 크리스마스 캐럴을 선물한 것은 야박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손때가 묻은 낡은 책은 그녀가 곁에 가까이 두고 자주 읽었던 소중한 책일 수 있다. 처음엔 펄렁이 책 선물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미시즈 윌슨의 가르침에 따라 책에 나온 어휘를 공부하고 그 후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는 모습을 보면, 독서가 주는 힘을 이미 알고 있는 어른으로서의 가르침은 아니었을까?

 

미시즈 윌슨이 집안 일꾼들의 종교나 계층에 대한 이분법적 선을 긋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상대를 대했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삶의 태도가 펄렁의 생()에도 알게 모르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 결과, 펄렁은 술주정뱅이 아빠를 둔 가난한 아이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줄 알고, 술만 마시는 사람의 괴로움에 함께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됐을 것이다.

 

남의 어려운 처지를 그냥 넘기지 못하는 펄렁일지라도 현실적인 선택 앞에서는 갈등의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그가 수녀원에서 착취의 삶을 살고 있는 세라를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전에 펄렁이 수녀원에 석탄과 장작을 배달하고 난 후 길을 잘못 들어 낯선 노인에게 길을 묻는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때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라는 노인의 답변은 바로 펄렁의 내면의 소리, 소신 있는 삶의 소리처럼 들렸다.

 

바람이 나무를 벌거벗기고 빗물이 강물을 불어나게 하는 것처럼, 삶의 상처와 사회적 부조리는 그냥 그대로 방치될 때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때 누군가 손을 잡아준다면, 연대의 힘이 함께한다면 나무엔 다시 잎이 돋고 꽃이 피고 강물은 잔잔해질 것이다. 작은 관심, 사소한 사랑은 더 이상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Comments

칭다오 06.18 13:35
아일랜드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둘 다 중편 소설로 삶을 사유하게 만든다. 이 두 작품을 읽고 클레어 키건이라는 작가,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더 궁굼해졌다.